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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재벌그룹 ‘새 격동의 시대’
이재용·정의선·최태원·구광모…
산업 융합·격변기 맞은 ‘3·4세들’
선대와 달리 주력 경계 허물고
이해관계 따라 ‘합종연횡’까지
인텔 낸드 인수·배터리 분할 등
“지금이 적기” 과감한 선제 투자
재계 주도권·글로벌 도약 각축
깐깐한 자본시장 환경도 변화
외국인·기관 투자자 외면 어려워
내부거래·지배구조 개편 풀어야
국내 4대 재벌의 1960~70년대생 ‘젊은’ 총수들의 통 큰 ‘베팅’이 올해 들어 부쩍 잦다. 세계적으로 미래차·반도체·바이오에 걸쳐 산업이 융합·격변 중인 상황을 맞아 협력하고 동맹하며 경쟁하는 각축이 숨가쁘다. 지난 20년간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한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들 3·4세 총수들은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지금이 도약의 일대 기회”라는 기치 아래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과도한 내부거래 축소와 지배구조 개편도 젊은 총수들이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재계 순위 1~4위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50)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60) 에스케이(SK) 회장, 구광모(42) 엘지(LG) 회장은 모두 그룹 태동기(삼성전자 1969년, 현대차 1967년, 선경유화(정유·화학) 1973년, ㈜엘지(락희비니루공업) 1962년)에 나고 자랐다. 최 회장을 빼면 그룹 총수 지위에 오른 지 3년이 채 되지 않는 총수 신참들이며 나이도 40~50대로 젊다.
이들이 마주한 환경은 아버지(이건희·정몽구·최종현·구본무) 총수 세대가 경험하고 뚫고 왔던 시대와는 아주 다르다. 모두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데다 산업 환경도 역동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주력 사업 영역마다 경계가 허물어지며 그룹의 명운을 건 합종연횡과 경쟁은 필연이다. 지난 5~7월 이뤄진 총수들의 ‘배터리 단독 회동’은 이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요즘 총수들끼리 회장 비서실에 알리지도 않은 채 모처에서 번개 미팅으로 사적인 회동을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엇비슷한 연배의 총수들끼리 서로 웃으며 악수를 나누지만 화제가 사업 이야기로 바뀌면 시장 장악을 다투는 기업가 면모로 돌변하는 풍경이 뒤섞이며 연출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 “아버지 때와는 다르다”…젊은 총수들의 출사표
외환위기 이후 20여년간 굳어진 재계 판도를 뒤흔들 만한 격동기에 총수 자리를 맡고 있는 터라, 저마다 한 획을 긋는 성과를 이뤄내야 한다는 중압감도 엿보인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14일 회장 취임사에서 “미래의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가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취임사에 ‘인류’를 일곱번이나 강조하며 자동차(미래차·자율주행차)를 기반으로 다른 그룹들을 선두에서 끌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지난 1월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왼쪽 둘째)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오른쪽)이 악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광모 엘지(LG) 회장, 최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이 부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맏형’ 최태원 회장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지금이 재계 판도 변동을 일으킬 적기라고 여기는 듯하다. 수년 전부터 그룹 슬로건으로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를 설파해온 그는, 이제 반도체에서 삼성과 경쟁을 벌일 태세이다. 2012년 세계 2위 메모리반도체 회사 하이닉스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엔 10조3천억원(90억달러)에 세계 1위 반도체 기업 미국 인텔의 사업부 일부를 인수하기로 했다. 그는 지난 9월 임직원들에게 “낯설고 거친 환경을 위기라고 단정 짓거나 굴복하지 말고 성장의 계기로 삼자”고 독려했다.
2018년 9월18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이 공군 1호기에 탑승해 나란히 앉아 대화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막내’ 구광모 회장 역시 엘지화학 배터리사업 물적 분할이라는 결단을 통해 2005년에 에스케이에 빼앗긴 재계 3위로 재도약하는 꿈을 이루려 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발걸음도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지난 5월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을 찾아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사뭇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같은 달 ‘시스템반도체 1위, 메모리 초격차 유지·확대’를 외치며 18조원에 이르는 삼성 특유의 ‘선제 투자’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달라진 자본시장과 사회 분위기도 이들로선 잘 살펴야 할 대목이다. 아버지 세대엔 고속 성장에 따른 과실에 자족하며 각종 불법행위는 애써 눈감아주던 모습은 크게 줄었다. 외국인·기관 투자자들은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들의 주머니만 불리는 의사 결정에 최근 수년 새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지배구조를 개편한 에스케이·엘지와 달리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회장은 이들 투자자이자 감시자의 시선과 행동을 외면하기 어렵다. 정 회장이 취임사에서 자본시장과의 소통을 이례적으로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3년에 걸쳐 검찰의 수사를 받고 법의 심판대에 선 것도 지배구조와 이와 결합된 승계 문제 때문이었다. 오는 엘지화학 물적 분할을 위한 주주총회를 앞둔 구 회장도, 소수 주주들의 반대 움직임에 신경을 곧추세우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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