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코로나에 GDP 15% 규모 재정·금융 대응
기업·소비자 체감경기 최악… 불확실성 증폭
"방역 우위 원칙 세우고 취약계층 집중 지원해야"
서울 마포구에서 일식집을 운영 중인 김모(44)씨는 요즘 매주 수요일, 목요일 아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치가 발표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매주 중반에 발표되는 확진자 숫자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단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김 씨는 "확진자가 늘어날수록 저녁 손님도 덩달아 줄기 때문에 확진자 숫자에 따라 식자재 주문량을 조정하고 있어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이 6개월 이상 이어지면서 기업, 소비자, 자영업자 등이 체감하는 경제적 불확실성은 사상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코로나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되는 300조원 규모의 재정·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지만,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확진자 숫자 등에 따라 ‘방역’과 ‘경제활성화’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 대응이 경제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고 지적한다. 정책이 일관성을 가지지 못해 정책 비용만 증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 정책이 코로나로 피해를 입는 취약계층에 경제적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대응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1차 비상경제회의 이후 코로나 경제위기 대응 목적으로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재정·금융 프로그램은 총 300조원에 이른다. 1900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올해 GDP의 15.8%에 해당되는 규모다.
막대한 정부 재원이 투입됐지만, 기업과 자영업자, 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의 경기인식은 최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SI)와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합친 경제심리지수(ESI)는 지난 9월 73.2로 전월대비 6.5포인트(P) 하락했다. ESI는 지난 4월 사상 최저 수준인 55.7까지 떨어진 후 7개월째 회복되지 않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들의 종합적인 경기인식을 나타내는 ESI는 기준치 100에서 낮아질 수록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로나 사태 후 경제심리가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는 것은 향후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향후 경기인식을 보여주는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업황 전망 BSI는 장기평균치(77, 82)를 2년 이상 하회하는 가운데, 코로나 사태 이후인 지난 3월부터는 70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향후경기전망(CSI)도 코로나 사태 이후인 지난 3월 이후 7개월 동안 장기 평균 수준인 80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기업과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증폭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이 증폭된 상황에서, 재정 투입 일변도의 정책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소비와 투자를 유보하고자 하는 심리가 팽배한 상황에서는,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가 충분하게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크리스찬 드 구즈만 이사는 최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은 코로나19가 직접적으로 촉발한 낮은 소비와 투자 제약에 따른 부정적 충격을 상쇄시키는 정도로만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낙관적인 경기인식을 바탕으로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일관성을 보이지 않은 것도 불확실성을 증폭시킨 요인으로 지목된다. 코로나 사태가 최소 올해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판단한 국내외 모든 경제예측 기관들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전망하고 있지만, 정부 나홀로 플러스(0.1%) 성장 전망을 유지하는 것은 정책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있다. 낙관적 성장 전망에 기반한 단기 경기부양책을 급조하고 있지만, 이런 대응이 결과적으로 방역 전선을 이완시켜 경기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 경제연구원 고위 관계자는 "비현실적인 플러스 성장률 전망치를 고집하는 것은 ‘정부가 코로나 경제 충격을 과소평가하고 있고, 경기지표 등락에 일희일비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서 "확진자 숫자가 줄 때 마다 경제활성화 등을 강조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방역 집중도를 저하시키면서 경기불확실성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확진자 숫자에 일희일비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코로나 확진자가 두자릿수 이하로 떨어진 지난 4월 이후 ‘방역보다는 경제’라는 신호를 준 것이 대표적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방역당국의 우려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대규모 세일 행사를 열었고, 추가경정예산 2000억원을 투입해 농수산물·관광·영화·공연·전시·체육 쿠폰을 뿌렸다. 외식·여행 등 내수 경제활동을 증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랬다가 확진자가 세 자릿수로 늘어나자 쿠폰 할인 행사를 취소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2단계 이상으로 상향해 식당 영업 등을 제한했다. ‘플러스 성장에 대한 집착’이 방역을 느슨하게 만들어 코로나 확진자 증가의 빌미를 제공하고, 이게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경제도 방역도 실패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불확실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경제보다는 방역’이라는 기조를 확고하게 세우고, 방역으로 인한 취약계층의 피해를 집중지원하는 방식으로 대응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규모 세일 행사 등으로 방역 집중도를 저하시키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정부 정책 지원이 자영업자·특수형태근로자(특고) 등 방역 강화로 피해를 입는 계층에 집중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 지급된 전(全)국민재난지원금의 경우 5~6월 소비경기를 일시 회복시키는 효과는 있었지만, 취약 계층 지원 측면에서는 효과가 불분명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5~6월의 소비 형태를 보면 내구재 소비는 증가했지만 자영업자 생계에 밀접한 서비스 소비는 회복세가 완만했던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재난지원금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의 기호품 구입에 활용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전국민 지급에서 자영업자 등 맞춤형 지원으로 갈팡질팡한 재난지원금 정책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차 재난지원금이 전국민지급 방식이 아니었다면, 소상공인 지원금이 1인당 200만원으로 제한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1차 지원금이 전국민 대상으로 지급된 것은 총선 등을 앞둔 정치적 배경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런 왜곡된 의사결정이 아니라 취약계층 보호라는 원칙에 따라 처음부터 맞춤형으로 지급됐다면 영업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수준에 지원이 부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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